인간은 왜 도덕적 동물이 되었을까
인간과 동물의 인내심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동물들 역시 멋대로 행동한 대가가 뒤따를 것을 확실히 알기에 본능적인 욕구를 참을 수 있다. 레트리버가 침을 줄줄 흘리면서도 혼자 치킨을 먹는 주인을 지켜보기만 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허락 없이 뺏어먹었다간 곧 벽을 보며 벌을 서야 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말로 치킨을 먹어야겠다면, 사실 레트리버는 주인을 물어버리고 치킨을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레트리버의 치악력은 생각보다 세다.) 결국, 동물들도 당장의 쾌락을 참을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동물의 도덕성은 처벌이 두려워 생리적 욕구를 자제하는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오직 영장류만이 유용성의 도덕성에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었다. 그들이 더 선하기 때문이 아니다. 더 비열하고 음침해서다. 영장류는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배신할 줄 안다. 대부분의 영장류들은 더 엄격한 무리 생활을 한다. 그래서 지위를 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한다. 영장류는 지위 투쟁의 과정에서 연합과 배신, 험담과 음모를 통해 무리의 리더를 끌어내리는 법을 배웠다. 사자나 늑대 같은 맹수들은 대개 1:1의 명예로운 결투를 통해 서열을 가리지만, 비비원숭이나 침팬지는 명예보단 여럿이서 한 명을 공격하는 치사한 싸움, 전문용어로 다구리를 더 선호한다. 덕분에 제 아무리 보스라도 만만한 상대를 함부로 괴롭힐 수 없다.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떄리기 위해선, 그럴듯한 명분을 필요로 하게 것이다. 아무리 크고 싸움을 잘한다 해도 한꺼번에 여럿을 당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비비원숭이나 침팬지가 복싱을 배웠을 리 없으니까. 결국 영장류들은 폭력을 사용할 정당한 이유, 즉 합리적인 근거와 기준을 필요로 하게 됨으로써, 조금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되었다.
동물학자들이 발견한 황당한 침팬지의 사례를 들어 보자. 한때 무리의 지도자였다가 젊은 침팬지들의 합동 공격을 받아 중간 지위로 떨어진 침팬지가 있다. 지위가 떨어졌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짝을 독점할 수도 없고, 맛있는 먹이를 먹을 때도 후순위로 밀려난 채 그는 옆구리가 시린 고독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수컷의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서, 가임기에 든 젊은 암컷을 보자 그의 욕망이 다시 불타올랐다. 한번 주지욕림의 생활을 맛봤다면 평범한 삶은 만족하지 못하는 법이다. 새롭게 왕좌에 오른 젊은 침팬지가 근처에 있었지만 패배자는 암컷에게 자신의 발기한 성기를 보여주며 자신의 남성성을 마음껏 뽐냈다. 젊은 독재자는 늙은 침팬지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채 암컷을 향해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새로운 리더는 큰 돌 하나를 집어 늙은 상왕에게로 다가간다. 돌로 머리를 내려쳐 자신의 여자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하려는 목적에서. 하지만 늙고 눈치 빠른 과거의 왕은 이미 자신의 물건을 원상태로 되돌려놓은 뒤였고, 머리를 가격할 근거를 찾지 못한 젊은 왕은 머쓱하게 돌을 내려놓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침팬지와 늑대의 차이점이 보이는가? 늑대는 싸우고 싶다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간이란 없다. 또 침팬지처럼 돌로 머리를 내려칠 정당한 근거를 찾으려 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늑대는 뒤를 생각하지 않는 용맹함을 가지도록 진화했지만, 침팬지는 냉철하게 나중을 생각하는 합리적 계산주의자의 면모를 지니도록 진화했다. 덕분에 영장류는 음모와 배신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를 불신하는 삶을 살게 되었지만, 대신에 리더의 폭력이 억제될 수 있었다. 부당한 폭력에 항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약 젊고 새로운 지도자가 이유 없이 옛 패자의 머리를 돌로 내려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주변의 침팬지들이 그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곧 나쁜 지도자란 소문이 돌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독재자는 신용을 잃어 축출되고, 돌을 집어드는 입장에서 돌을 두려워하는 입장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영장류는 연합과 배신, 쿠데타와 뒷담화의 달인이다. 그 결과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본능적 쾌락이 지배하는 도덕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진화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오늘날 늑대의 후손들은 비굴하게 침을 질질 흘리면서 주인이 치킨 한 입만 주기를 바라거나, 동물원에 갇힌 채 개체수가 적단 이유로 짝짓기마저 엄격하게 통제당하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반면 영장류는 전 세계 어디에나 퍼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유독 머리가 크고 뒷담화를 잘하는 종은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다. 늑대를 두려워하는 입장에서, 늑대를 가둬놓고 구경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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