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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한국 사회는 어떻게 생겨먹었나#3

by Catsby. 2023. 3. 31.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자살률은 낮은 편에 속했지만, 2000년 이후 급증해 17년 동안 1위를 유지하고 있다. 10대 자살률과 사망 원인 또한 OECD 국가 중 1위다. 반면에 다른 국가들은 자살률이 감소하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이 사회적인 현상이라는 증거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한국 사회가 살기 힘든 곳이라서? 생존의 위협 때문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에 속한다. 새벽에 술 먹고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별 탈 없는 나라는 별로 많지 않다.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객관적 지표 또한 나쁘지 않다. 한국은 꾸준히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몇 십 년 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식주 환경이 개선되었음에도 자살률은 계속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수치로만 측정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는 뜻이다. 1인당 GDP나 구매력지수 같은 경제 지표로 자살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자살은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심리적인 문제다. 결국 한국 사회가 한국들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해 보지 않으면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뒤르켐은 사회적 자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보았다. 한국은 뒤르켐이 말한 이기적 자살, 숙명론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이 공존하는 형태를 보인다. 우선 이기적 자살부터 알아보자. 오해해선 안 된다. 일반적인 의미의 이기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뒤르켐은 가족이나 친구 등의 공동체에 소속되는 정도가 약할수록 자살이 늘어난다고 보고, 이를 이기적 자살이라 불렀다. 쉽게 말해 개인주의가 자살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도시화ㆍ산업화 역시 지나치게 빨리 진행된 국가다. 그 부작용으로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고, 세계 인구 밀도 1위의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이렇게 인구 밀집이 극해진 환경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익명성이 심해지고 관계의 질이 떨어지는 반면에 경쟁은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동물들은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필요로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공간적ㆍ심리적인 최소 거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누구나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기 마련이다. 그러한 감정을 완화해 주는 것이 사회적 연결성인데, 도시화는 관계의 질을 오히려 약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사회와의 끈을 놓아버린 개인은 자기 존재의미에 대해 다시 따져 묻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숙명론적 자살이다. 숙명론적 자살이란 개인이 강압적인 사회 구조에 의해 욕망과 개성을 제한받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자살이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걸 당연시해 왔다.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 한국에서만 유난히 엄격한 선후배 문화, 기수 문화, 나이 문화로 잔존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의 역사적 무의식 속에는 서열 중심적인 사고가 자리 잡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순위를 매기고 서열을 따지는 사회에서 다름을 인정하거나 너그러울 리 없다. 영국 BBC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관용도는 27개국 중 26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타인에 대한 신뢰도 역시 매우 낮았고,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을 신뢰하는 정도는 꼴찌를 기록했다. 한국인들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거나 배척하는 경향이 극도로 크다. 각자의 개성과 자유가 억압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란 이들이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법을 배울 리 없다. 그런 사회에선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로운들 마음은 가난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요소는 아노미적 자살이다. 아노미적 자살이란 사회 구조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기존의 가치가 해체되며 사람들의 가치관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전쟁, 경제 공황은 아노미적 자살을 일으키는 대표적 요인이다. 실제로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자살률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IMF를 기점으로 경제 구조가 지금과 같이 대기업 중심으로 바뀌었고 쉬운 해고, 비정규직 등으로 일자리의 형태가 바뀌었다. 삶의 안전성 역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에 맞추어 가치관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각자도생의 시대가 온 것이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불안해하고, 서두르고, 비교하게 된 것이다. 공황장애 환자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고. 괜히 90년대를 그리워하는 레트로 열풍이 불고, 낭만의 시대였다며 추억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기적 자살, 숙명론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의 형태가 결합된 사회가 보이는 특징이 있다.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는 집단주의 체제이면서도 동시에 사람 대 사람, 사람 대 사회 간의 연결성과 친밀도는 희미하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독특한 형태로 혼재하면서 사회적 긴장도는 꾸준히 증가하는 곳이다. 그 결과로 받아 든 성적표가 OECD 국가 자살률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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