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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안에 책 한 권 읽기

인간은 유전자의 노예일까#1

by Catsby. 2023. 5. 21.

인간은 유전자의 노예일까

 

 

https://youtu.be/DWpCwg0voX4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영국의 왕과 위인들의 묘비와 기념비들이 모여있습니다. 스티븐 호킹과 뉴턴의 유해도 이곳에 묻혀 있죠. 이곳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위대한 과학자는 바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입니다. 다윈은 『종의 기원』과 진화론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처음에는 신학자를 꿈꾸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변화의 시작은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해보겠다는 22살 청년의 낭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831년 12월 27일, 비글 호가 영국을 출발해 5년간의 세계 일주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835년 9월에는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600마일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를 방문합니다. 다윈은 겨우 5주만 여기서 보냈지만 이때 발견한 증거를 바탕으로 종의 기원에 관해 쓰기 시작합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핀치새를 보고 진화론의 영감을 얻습니다. 핀치는 갈라파고스 섬에서 서식하며 열매를 쪼아 먹는 작은 새입니다. 다윈은 핀치를 관찰하던 중, 섬마다 핀치의 부리가 다른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창조설대로라면 모든 종은 신에 의해 완벽히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새들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다윈은 여러 섬을 돌며 핀치가 어떤 먹이를 쪼아 먹는지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핀치 13종의 조상은 같지만 시간이 지나며 열매 크기에 맞춰 부리 크기 또한 달라졌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 바로 자연선택입니다.

 

 이후 항해에서 돌아온 다윈은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의 원리에 관한 에세이]라는 책을 읽게 됩니다. 맬서스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 식량 공급이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해결책으로 기아나 질병, 전과 출산 제한 등을 통해 출산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지금 보면 끔찍한 생각이지만, 다윈은 곧 이 적자생존의 아이디어가 모든 생물 종에 적용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진화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종의 기원』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 풍자만화를 보면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 얼마나 큰 오해를 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윈의 얼굴에 원숭이의 형상을 한 그림입니다. 다윈은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 말한 적이 없지만, 만화에는 인간이 어떻게 원숭이에서 진화했냐고 조롱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생각에는 인간은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른 고등생물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인간만이 스스로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고, 환경을 바꿀 수 있고, 지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보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다른 동물들도 생각을 할 줄 알고 언어와 사회성을 통해 환경을 바꿀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이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뿐이죠. [종의 기원]이 초판으로 세상에 나온 지 160년이 지났음에도 진화론은 여전히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진화론에 대해 짧은 설명을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시험에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진화론의 핵심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종교적 신념에서 진화론을 거부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도 진화론을 과학이 아니라 단순한 이론 중 하나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눈으로 관찰하거나 실험할 수 없으니, 증명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진화론은 명백한 과학이며, 의심할 여지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게다가 자연선택의 개념은 '약자는 도태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용되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인종청소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습니다. 백인은 우월하고 흑인과 황인종은 열등하다는 골상학의 근거로 악용되기도 했죠.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오해받을까 봐 22년간 철저히 준비했지만, 그럼에도 오해와 악용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는 말은 진화론에도 통용됩니다. 진화란 DNA의 복제 오류로 인해 나타난 우연한 돌연변이가 환경에 더 잘 적응하기만 한다면 개체군 내에 퍼져나가 그 종의 일반적인 특성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식의 수를 더 퍼트릴 수만 있다면 언뜻 불리해 보이는 행동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수컷 사마귀는 짝짓기를 할 때 암컷 사마귀에게 먹힘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더 멀리 퍼트립니다. 이러한 특성은 열등하거나 고귀한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컷 사마귀 또한 어떤 목적이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아닙니다. 남편을 먹어 영양분을 보충한 암컷 사마귀는 더 많은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경쟁에서 승리한 돌연변이 유전자는 오랜 시간이 지나 종의 보편적인 행동이 됩다. 겉으로 보면 수컷 사마귀의 눈물 나는 사랑으로 보이지만 말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유전자입니다. 진화의 핵심 단위는 유전자이며, 진화론은 어떻게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종의 보편적인 형질이 될 수 있는지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개념을 대중적으로 쉽게 설명한 책이 바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입니다. 도킨스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 유전자의 자기 복제를 위한 생체기계다"라고 말합니다. 너무나도 냉정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개개의 생명은 수명이 너무 짧아서 진화의 시간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종의 형질이 바뀌려면 최소 수천 년에서 수만 년이 지나야 합니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이기적 유전자'라는 비유를 꺼내든 것입니다.

 

 하지만 도킨스 또한 다윈처럼 오해를 피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큰 분노와 혼란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대중들, 심지어 지식인들까지 도킨스를 비난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유전자라는 실체가 머릿속에서 우리를 조종하다가 육체가 노화되면 후손에게로 갈아타는 것처럼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생체 로봇에 불과하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고귀함은 땅에 떨어진 듯이 보입니다. 부모의 헌신, 연인에 대한 사랑이 그저 유전자가 시킨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른 결과로 보이니 말입니다. 사실 도킨스가 하려던 말은 정반대였지만, 사람들은 이기적 유전자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책의 내용이 쉽지 않은 탓도 있겠지요. 하지만 책의 숨겨진 의미를 이해한다면 왜 진화론이 그토록 중요하고 아름다운 이론인지 아실 겁니다. 다음 영상에는 자유의지의 문제, 그리고 사회학자들과 진화론자 간의 본성과 양육 논쟁에 대해 본격적으로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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